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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어요
2017-07-20 18:16:04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어요






“죽고 싶어요. 왜 사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지옥이에요.”
전화기 너머에서 폐인이나 다름없는 목소리가 절규하고 있었다.

그녀는 최근 안타깝게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유명 스타의 이름을 얘기하며 그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통화를 할수록 그녀의 삶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고 한편 처연해서,
또 한 생명이 부질없이 질까 하는 노파심에 부랴부랴 예약 시간을 잡았다.


예약 시간에 맞춰 친구와 본원을 찾은 그녀는 츄리닝 차림에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에 머리도 감지 않았고 후줄근한 모습 그 자체였다. 그녀의 얼굴에선 그 어떤 희망이나 의지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매사에 의욕이 없고 머릿속이 안정이 안 되고 인생이 허무하고 무엇이 억울한지 그저 억울하고 분할뿐이라고 했다. 가슴속에 가득 찬 분노 때문인지 한번 화가 나면 참을 수가 없을 정도여서 고함을 지르고 가슴을 치고 울고불고하다가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인정할 때야 비로소 안정이 된다는 것이다.


신경정신과에서 8년 전부터 우울증으로 진단받고 약을 복용 중이지만 그저 멍하게 될 뿐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 같고 그저 죽고 싶은 마음만 든다고.
그래도 모든 것을 포기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본원을 찾게 되었다고 했다.


면접 중에 털어놓은 그녀의 인생은 그동안 많은 내담자를 만나 왔다고 자부했던 필자도 눈물을 삼킬 만큼 파란 많고 굴곡진 삶이었다.


다음은 면접을 끝내고 최면 상담 내용 중 일부이다.


■ …엄마가 내가 배가 고프다니까 밤에 동생을 업고 내 손을 잡고 추운데 걸어서 걸어서 큰이모네 집으로 밥을 얻어먹으러 갔어요. 오빠는 이모가 엄마한테 ‘새끼만 줄줄이 낳아서 감당도 못하면서 밥이나 얻어먹으러 다닌다.’라고 한다고 안 간대요….


□ 왜 밤에 갔나요?


■ 낮에는 이모 집에 가면 싫어해요…. 사람들 보면 챙피하다고…. 그래서 밤에만 가요…. 엄마는 밥도 먹지 않고 우리만 먹게 해요…. (흐느끼며) 눈치 보이니까….


■ 그런데 사람들이 엄마보고 미쳤대요…. 미친 여자래요…. 사람들이 손가락질해요….


□ 왜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나요?


■ 엄마가 낮에 개울에서 옷을 벗고 몸을 씻어요…. 자기 몸이 더럽다고…. 나는 창피해서 말도 못 걸어요…. 동생이 울어요…. 그래서 내가 꼬집었어요…. 경찰아저씨들이 와요…. 미친 여자라고 그래요…. 우리는 울었어요….


□ 몇 살 때 일인가요?


■ 4살에서 5살쯤 됐어요. 엄마는 매일 그래요…. 자기 몸이 더러워서 씻어야 한다고….


□ 그 후 어떻게 되었나요?


■ 나는 둘째 이모 집에 가서 살게 됐어요…. 동생은 어디 다른 데로 가고요…. 이후 1년여쯤 지났을까 제가 5~6세 됐을때 큰 이모집엘 데려가요…. 골방 같은 데를 데려갔는데 해골만 남은 사람이 누워있어요…. 무서웠어요…. 그게 엄마래요…. 엄마가 눈물을 흘리면서 손을 내밀어요…. 그런데 나는 무서워서 안 갔어요…. 그런 후 얼마 뒤 엄마가 죽었대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이후 엄마한테 미안했어요…. 엄마가 그립고 외로웠어요…. 이후 매일 기도 했어요…. 나도 데려가 달라고요….


■ 우리 아빠가 미워요…. 나를 버리고 갔는지…. 그래서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다녀왔는데, 문 앞에서 어떤 아저씨하고 이모하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나는 그 사람이 아빠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아빠가 맞았어요…. 나를 목마를 태우고…. 울면서 ‘나쁜 놈’이라고 하래요…. 다시 온단 말을 하고 버스를 타고 가는데 나는 다시 안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몰래 버스를 따라갔어요….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서러운 듯 큰소리로 흐느껴 울었다.) 그게 아빠를 본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었어요….


■ 이모 집에서 살면서 이모네 오빠들하고 너무나 차별이 심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중학교에 갈 때가 됐는데 돈이 없어서 못 간대요…. 그런데 둘째 오빠가 나를 내쫓으래요…. ‘지금까지 먹여주고 재워줬으면 됐지, 무슨 중학교냐.’라고…. 그래서 저는 숨도 못 쉬고 살았어요….


■ 그리고 1년 동안 봉제 공장에 다녔어요…. 그리고 그 돈을 이모를 갖다줬어요…. 나는 한 번도 울지 못했어요…. 한 번도 뭐해 달라고 못했어요….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 그러다가 강원도로 갔어요…. 그곳에 오빠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중학교에 다니게 됐어요…. 그런데…. 중2 때 오빠가 나를 성폭행했어요…. 죽고 싶었어요…. 왜 오빠가 동생을…. 그래서 밤에 책가방을 들고 대구로 도망갔어요…. 이모 집으로…. 왜 학교 가야 하는데 왔느냐고 하는데 차마 오빠 얘기를 할 수 없었어요…. 그래도 형젠데…. 그때부터 막살았어요…. 그래 될 대로 돼라…. 그러다 열여덟 살에 몸이 너무 아팠어요…. 춥고…. 그런데 피를 토했어요…. 병원에 갔더니 폐결핵이래요…. 4개월 정도 입원했어요….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앰뷸런스 소리가 많이 들렸어요…. 아~ 누가 또 이렇게 죽어가는구나 하면서 처음으로 날 낳아준 엄마한테 감사했어요…. 예쁘게 낳아 주셔서 고맙다고요…. 그리고 완치되었어요….


■ 그 이후 24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어요…. 아버지가 그리웠는지… 나이 많은 남편을 만나서 기대고 의지하고 싶었어요…. 나름대로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 따뜻하게 대해주지도 않고 바람둥이였어요…. 남편 때문에 내 인생에 큰 오점을 남겼다고 생각이 들어요…. 마음속에 분노가 꽉 찼어요….


■ 8년 전에 동생을 찾았는데…. 찾고 보니 어색하고 아버지도 다른 것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3형제가 엄마는 같았지만 아버지가 각각 다 달랐어요….


그녀의 내면에 깊이 각인되어 끊임없이 그녀의 발목을 잡아끌었던 온갖 부정적인 기억들을 분리시키고, 그녀가 살아온 기막힌 삶을 공감하고 지지와 격려 속에 한없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는 과정에서 첫 회의 상담이 모두 끝이 났다.


울면서 시작한 상담이었는데 끝날 즈음엔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며 필자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면 상담을 해서도 효과가 없으면 죽어버리겠노라고 약까지 품고 온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번 상담을 통해서 자신이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함께 본원까지 동행해준 친구에게 진심 담긴 감사의 인사를 할 정도로 기분이 밝아져 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몇 회의 상담을 꾸준히 받은 그녀는 필자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이 은혜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며 거듭 감사의 인사를 하고 본원을 나섰다.


그 후 그녀는 상담한지 근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밝은 목소리로 수시로 전화를 걸어 근황을 묻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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