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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찾아주세요
2017-07-20 17:24:14

내 아이를 찾아주세요





방송국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에 조상신의 빙의에 대한 기획이 있는데, 아무래도 필자가 하는 내용과 잘 맞아떨어질 것 같다며 취재를 나가도 좋겠냐는 문의였다.
나는 아무래도, 그 동안의 자료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것이 좋을 듯싶어, 의뢰가 왔던 상담자 중하나를 워크숍 도중에 알아보기로 했다.
PD 는 워크숍 내용과 함께 빙의 사례도 취재하고 싶다며 흥미를 보였다.

상담자 김유선(가명)은 공부하는 학생 중 하나인 서영(가명, 앞의 사례 중 전생에 조선의 옹주였던 여인.)을 통해 소개를 받았다고 했다. 연구소에 왔던 적이 있는 서영의 어머니가 잘 아는 분이었다.
일전의 사례에 의해 잘 알겠지만, 서영은 최면 감수성이 높은 편이다. 또한, 최면 상태에 들어가면 영적인 부분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필자는 그런 서영을 통해 좀 더 색다른 상담을 PD에게 제안했다.
서영과 유선을 각각 서로 다른 두 곳에 놓고, 서영에게 유선의 안에 빙의되어 있는 영가를 직접 불러내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두 장소는 같은 층이지만 약 7m가량 떨어져 있고, 둘 사이에는 벽이 가로막고 있다. 이 상담은 유선의 안에 있는 빙의령에 대한 것도 알 수 있겠지만, 일반인, 즉 서영이 최면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좀 더 초월한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필자는 유선을 상담실에 두고 편안한 마음과 자세로 않아있게 했다.
그리고 밖에선 서영 에게 최면을 유도했다. 물론 양쪽 모두에서 카메라가 지키고 있었으니 목소리가 세어 나갈 리는 없었으며, 서영은 유선을 개인적으로 알 지 못하고, 또한, 유선의 신상에 대한 전반적인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 (필자는 서영을 최면상태로 유도 후 특별한 방법으로 암시한 후) 내담자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도 알아봅니다.
□ 조금…….불안해해요.

최면상태에 들어간 지 얼마가 지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 좋아요. 그 안에 다른 존재가 있나요?
□ 세 사람이....있어요. 세 사람이요. (그녀가 확신에 찬 듯 말했다.) 둘은 어른이고, 한 명은 애 같은데..
■ 더 깊이 집중합니다. 그 둘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 아…….보지 못하게 눈을 자꾸 가리네...남자가....나이든 남자가요.
■ 그에게 누구냐고 물어보세요.
□ 알 것 없데요. 음성만 들리는데 나이든 남자예요. 노인.....등을 돌리는 것 같아요.
■ 그 외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나요?
□ 어…….

그녀가 갸우뚱거리며 약간 머뭇거렸다.

□ 저기…….우리나라 애 같지가 않은 아이가 있어요. 음…….생긴 게 우리 나라 아이가 아녜요. 서구적으로 생긴…….혼혈아요!
■ 불러서 물어보세요. 누군지, 언제 들어왔는지…….
□ …….미국에서 나올 때 같이 왔데요…….엄...마? 엄마래요....아우! 답답해…….
■ 왜 답답한가요?

서영의 목소리가 가늘어지며 답답해한다. 그러다 금새 어린애 같이 울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의 영이었다.

■ 왜 우니? 나하고 얘기해보자. 왜 울지?

이제 서영은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울었다.

□ 슬퍼…….
■ 왜 슬프지?
□ 가슴이 답답해…….흑흑…….
■ 아가. 혹시 혼혈아니?
□ 응.
■ 몇 살이지?

서영이 양 손가락으로 일곱을 펴 보인다.
그 뒤로도 간단한 것을 질문했지만 아이의 영은 계속 칭얼대기만 했다.

■ 아가. 그 안에 너 말고 또 누가 있지?
□ 두 명 더…….누군지는 몰라.
■ 누군지 물어봐.

곧 아이가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 나보고 잡놈이래! 할아버지가 나보고 잡놈이래! 으앙! 할아버지가 막 욕 하구 갔어.
■ 자, 할아버지 말고 또 누가 있지?
□ …….할머니.
■ 할머니한테 한번 물어보겠니?
□ 할머니는 누워있는데…….할머니 두 등 돌렸어. 나 하구 얘기 안한데. 얘기하기 싫은가봐. 할머니는 엄마 머리 위에 누워 있고, 할아버진 엄마 가슴에 있고…….
■ 자, 할아버지. 저하고 직접 대화하세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 탁!' 소리와 함께 서영이 갑작스럽게 필자의 손을 뿌리치며 혀를 찼다.

■ 할아버지 언제 들어오셨어요?
□ 알아서 뭣하나.
■ 어떻게 되는 사인데 들어와 계시죠? 그곳이 계실 곳이 아니잖아요.
□ 내 손녀다! 왜!
■ 그럼 바로 윗대 할아버지 세요?
□ 5대조다.
■ 언제 오셨나요?
□ 쟤 고생 할 때부터 들어 왔으니 한 20년은 됐지.
■ 손녀가 많이 힘들어해요. 들어오신 목적이 뭔가요?
□ 내가...가슴이 아파. 휴우…….
■ 언제 돌아가셨어요?
□ 쉰 넘어서 죽었지. 가슴이 아파서. 가슴이 많이 아팠는데..
■ 어디서 돌아가셨어요?
□ 우리 집. 충청도…….

서영이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쳤다.

■ 손녀에게 들어오셔서 손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셨나요?
□ 내가 그리 죽었으니 가슴도 아프고...내가 즐기던 담배도 피우고...후우....아무도 나를 안 알아줘. 내 아파 죽은 것도 한이 되는데...나 죽을 때 아무도 못 봤던 것도 그렇게 한이 되는데...내가 생전에 그렇게 아팠는데 아무도 몰라줬어. 휴우…….

여전히 한숨을 쉬며 할아버지 영가는 안타깝게 자신의 사연을 토로했다.

■ 손녀한테 들어오셔서 어떻게 해 달라는 건가요?
□ 날 좀 알아달라고. 아가! 내가 죽고 나서 제삿밥 한번 제대로 못 얻어먹었다…….
■ 예, 할아버지.

이제 할머니 영을 부를 차례였다.
그러나 필자가 할머니의 영을 부르기 전에 서영이 고통을 호소했다.
머리와 눈이 깨질 것 같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잠시 서영을 진정시켰다.

■ 자, 다시 한 번 시도합니다. 할머니. 사연을 말씀해주세요. 손녀 안에 들어와 계신 목적이 뭐죠?
□ 어휴...몸이 다 아프다. 내 몸이 다 아파.
■ 언제 돌아가셨나요? 병으로 돌아가셨나요?
□ 나이 먹어서 갔어. 일흔에…….
■ 어디가 제일 아프셨어요?
□ 젊었을 때 매를 하도 맞아서 온몸에 골병이 들었지...머리며 어디며 기운도 없고 온몸이 다 아팠지.
■ 할머니, 왜 손녀 꿈에는 그렇게 자주 나타나세요? 할머니만 다녀가시면 손녀가 그 다음에 그렇게 앓는다고 하던데요.
□ 나 때문에 아픈 겐가! 내가 제 녀석 아프기 전에 미리 알려주는 게지! 쟤가 원래 객지 생활을 오래 해서 몸이 안 좋아.
■ 할머니는 원하시는 게 뭔가요?
□ 어휴..쟤 애비.....어휴.....쟤 애비가....

할머니의 영은 말을 제대로 잊지 못했다.
일단은 영가들은 모두 진정시키고 서영을 최면상태에서 깨어나게 했다.
서영은 아이의 영혼일 때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영은 아이가 말을 걸면 무서운 눈초리로 쳐다보며 안 좋게 대했다고 한다.
서영이 한 말이 모두 사실인지에 대해 확인 할 차례였다.
이번엔 상담실 안에 있던 여인을 밖으로 불러내 최면을 유도했다.

■ 그녀를 최면상태로 유도 후 내면의 영가들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자, 머릿속에 누가 있나요?
□ ...어떤 할아버지가 쳐다보고 있어요. 머리..뒤쪽에요. 부리부리한 눈밖에 안보여요.
■ 그 분께 누구냐고 물어보세요.
□ ....5대조 할아버지래요. 무서워요.
■ 왜 들어오셨는지 물어보세요.
□ 아버지 때문에요. 원래는 아버지 몸에 들어와 계셨는데 아버지가 사고가 나면서 튕겨져 나왔데요. 그런데 제가 그때 병원에 있었거든요. 그때 들어왔데요. 20년쯤 전에.
■ 왜 계속 거기 계신데요?
□ 손자, 손녀들하고 있는 게 편하시데요.
■ 이제 할아버지. 저와 직접 대화합니다. 할아버지 지금 어디 신가요?
□ 머리.

곧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가늘어지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 어떻게 돌아가셨나요?
□ 온몸이 다 아파서....기운도 없고....
■ 할아버지가 아니신가요?
□ 얘 할아버지 금새 다녀 가셨잖아!

살아 계실 때의 증상이 뒤바뀐 것 같아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는 금새 돌아가시고 다시 할머니가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 맞아서 돌아가셨어요?
□ 젊었을 때 매질을 하도 다해서 시름시름 앓다가 갔지....허리며 어깨며 많이 다쳤어.
■ 그럼 손녀 머리는 왜 아픈가요?
□ 내가 심심할 때마다 쥐어박지! 후후후

사람의 몸에 빙의 되어있는 영가는 단순하여 심심해하는 경향이 자주 있는 편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 할머니의 영처럼 사람을 괴롭히기도 한다.

■ 온 몸이 다 아픈 건 할머니 영향이고, 머리는 심심할 때마다 한 대씩 쥐어박으신다는 거죠?
□ 그렇지.
■ 할머니, 할머니 소원 다 들어드릴 테니 할머니도 손녀 잘 되게 도와주셔야 해요.
□ 저어..내가 우리 손녀에게 할 말이 있어. 얘가 너무 천덕꾸러기로 살고 있어서 내가 너 가여워 잠시 데리고 있었던 거야…….
■ 예, 잘 알았습니다. 할머니 그럼 그 안에 꼬마 있죠? 그 아이 좀 불러주세요.

갑자기 유선이 당황해 하며 울기 시작했다.

■ 왜 우나요?
□ 어...어어....내 애기에요.....
■ 아가. 엄마가 네 생각이 나서 우시네.
□ 어어윽.....없어. 하나가 없어요! 하나가! 우리 이슬이가 없다! 우리 이슬이좀 데려다 줘요. 우리 이슬이가 없어!

그녀가 사정하듯이 울부짖었다.
안타까웠다. 그녀가 잃은 아이가 둘이었던 것이다. 아이는 쌍둥이였다.

■ 자, 진정하고 지금 있는 아기 이름이 뭐죠?
□ 슬기예요.
■ 슬기한테 직접 질문합니다. 슬기야! 엄마 안에 언제 들어왔지?
□ 엄마가 미국에서 나올 때.
■ 어떻게 죽었지?
□ …….

유선을 입을 통한 아이의 영이 굉장한 사실을 말해냈다.

□ 교통사고...아빠가...그랬어. 아빠가 생일날 슬기랑 나랑 데리고 나갔는데....오토바이 타고 가다가 일부러 넘어졌어.
■ 어째서 일부러 넘어졌지?
□ 양육비 안 주려고. 넘어지자마자 차가 우리를 덮쳤어. 동생은 바로 죽어버리고…….나 혼자 만 차로 병원에 옮겨지는데 죽었어. 아빠는 살짝만 다치고…….
■ 아빠가 왜 그랬을까?
□ 아빠랑 엄마랑 싸워서 아빠가 집을 나갔어. 엄마 혼자 우릴 키웠는데, 너무 힘들어서 엄마가 양육비를 요구하니까 안 주려고…….생일날 우릴 데리고 나가서 넘어뜨렸어. 우린 가기 싫었는데…….

말문이 막혔다. 어리더라도 영은 모두 알고 있다. 죽어서는 원하면 진실을 알 수 있게 된다.

■ 동생은 어디 있지?
□ 잠깐 나갔어요.
■ 그래. 몇 살이고 죽은 지 얼마나 됐지?
□ 다섯 살 때…….9년 됐나봐요. 동생두요. 우린 쌍둥이예요.
■ 왜 엄마한테 들어왔어?
□ 엄마니까요! 엄마 뱃속이 편해서 좋아요!
■ 너 때문에 엄마 어디가 아프지?
□ 우리 엄마 애기 못 가져요. 동생 생기면 엄마는 우리 다 잊어버릴 거잖아.

자주 있는 일이었다.
보통 아이의 영이 엄마의 안에 들어오면, 그 엄마가 아기 낳는걸 방해한다. 엄마의 관심이 사라지며, 동시에 자신을 잊어버리게 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 아빠는 어느 나라 사람이지? 이름은 뭐야?
□ 미국사람. 데이비드.
■ 뭐 하는 사람이지?
□ 군인장교였는데, 이젠 트럭 운전해.
■ 어디에서?
□ 인디애나 주.
■ 좋아. 이젠 동생을 찾아봐.
□ 헤헤헤…….
■ 왔니?
□ 이슬이에요. 오빠랑 같이 있어요. 오빠랑 나랑은 항상 같이 있어요.
■ 아깐 어디 있었어?
□ 무서워서 나갔다 왔어요.

아이들은 모두 천진했다.
그런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한 애들의 아빠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 아빠는 기억나?
□ 아빠 얼굴도 잘 못 봤어요. 일 년에 한번. 육 개월에 한번. 와서도 우릴 때리기만 하구.
■ 아빠가 어때?
□ 그땐 미웠는데 이젠 우리가 괴롭혀 줄 수 있어요. 사고도 나게 하고. 다리도 부러지게 하 고. 엄마가 애기 가지려고 했을 땐 엄마한테도 그랬어요.

사실 유선은 여러 번의 임신 실패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는 막달에 아무 이유 없이 아이가 잘못되는 경우도 있었다.

■ 아빠한테 한번 가볼래?
□ 음…….아빠한테 갔어요.
■ 뭐하지?
□ 자고 있어요.

시간상으로 볼 때 그곳은 우리와 반대였다.

■ 그 곳을 설명해볼래?
□ 어떤 여자랑...같이 자요. 방이고.....새벽 이예요.

필자는 이쯤해서 유선의 몸 안에 있는 영가들을 달래서 소원을 들어 줄 테니 그때까지는 힘들지 않게 해야 한다고 암시하였다.
최면 상담은 우선 이쯤에서 끝냈지만, 몇 일후 이 현상을 현대문명이 증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병원에 가서 그녀가 아픈 부위에 대해 진찰을 받아보기로 했다.
필자는 이 일을 하면서 과학으로는 증명할 수 없지만, 증명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그런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은 더욱 문제라는 것을 나는 많은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오늘도 또한, 서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떨어진 곳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직접 보여줬다.
세상은 과학의 힘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사람의 일은 과학만으론 설명하기 힘든 무엇인가가 있는 게 확실하다.
유선의 몸에 빙의 되어 있는 영가를 확실히 달래 영계로 보내기 위해 다음을 기약하며, 오늘은 상담을 마치기로 했다.

며칠 후, PD에게 연락이 왔다.
프로그램 상 여러 경우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의학적인 부분으로도 다가간다는 것이다.
유선은 병원에서 간단한 뇌파검사 등을 받게 될 것이다.
필자는 그녀가 검사를 받기 전에 유선의 몸속에 깃들어 있는 영들에게 그들의 흔적을 검사 시에 표현하기를 당부했었다.
그 후로 유선이 웃는 모습으로 필자를 찾아왔다.
촬영을 위해 갔던 병원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가 있었다는 PD의 말은 이미 들은 뒤였다.
뇌파 검사 중, 아무도 알 수 없는 이상한 파동이 심하게 요동치며 모니터에 잡혔다는 것이다. 더불어 아이들이 있던 아랫배 쪽도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움직임은 정상인이 일부러 하기에는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지켜보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말도 함께 전해왔다.
유선은 상담 전에 필자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 할아버지께서 자꾸 말을 건네요. 원장님과의 약속대로 아프게 하진 않으시고요. 원장님께 드릴 말이 있데요."
필자는 유선을 안정시키며 조용히 최면상담에 들어갔다.

■ 머릿속으로 가 보세요. 누가 있나요?
□ 할아버지가 와 계세요.
■ 할아버지. 저번엔 가슴에 계시더니 이젠 머리로 가셨어요?
□ 이 녀석 병원에서 검사할 때 나왔던 게 나다. 약속 했잖나.
■ 그러셨어요! 감사해요! 할아버지 그 안에 계시느라고 힘드시죠?
□ 죽겠어∼ 이제 그만 할 말하고 가야지.
■ 예. 그 안에 계시면 안 되죠. 좋은 곳으로 가셔야죠. 이제 할아버지 하실 말씀 하세요.
□ 내...묘가 비가 오면 물에 잠겨. 그런데 참...기가 찬 일이 있었네.
■ 예. 말씀 해보세요.
□ 내 묘를 돌보는 애가 하나도 없었어. 비만 오면 물차고, 잡초가 무성하고 봉분 한쪽은 무너져서 이게 무덤인지 언덕인지 모를 정도가 됐어. 그런데 말이다...얘 아버지가 그 앞을 지나가며 혀를 차는 거야, 글쎄...'쯧쯧..누구 조상인데 저렇게 함부로 하나...' 이러고 말이 야. 내가 그 소릴 들었지. 그러고 나선 기가차서 내가 얘 애비한테 실렸네. 그러다 얘 애비가 사고가 나면서 튕겨져 나와 얘한테 실린 거지. 그게 할 소린가...제 조상인지 몰라보고 욕하는 게 말이야...

정말 기가 찬 일이었다.
아무리 5대조면 먼 조상이라고는 하지만, 선산에 묻힌 자신의 직계조상도 몰라본 후손에게 내릴 수 있는 벌이었다. 더구나 유선의 아버지는 제 조상의 묘를 보고 돌보지 않는다고 혀까지 찼다고 하질 않는가.
유선에게 실린 5대조 할아버지의 원통함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 할아버지 묘가 어디 있어요?
□ 전라도 정읍. 정읍에 있는 선산. 산에 뱅 둘러져 있어....반쪽이 허물어져 나머지 반쪽 뿐 인데 경사가 졌어. 언덕에 돌덩어리 얹어 놓은 것처럼 불룩해.
■ 유골은 있나요?
□ 있지...차서 화장이나 시켜줬으면 좋겠어. 걱정 없이 편하게. 지금은 물이 차서 들어가지도 못해. 그러니 물 빠지면 화장이나 시켜줘.
■ 예 할아버지. 약속드릴게요. 다른 건 원하는 게 없으세요?
□ 없어∼나도 이제 편하게 쉬고 싶어. 얘네나 잘 되면 그걸로 됐지. 고마워. 자네 때문에 다 들 내 원통한 것들 알아주고...자네하고 한 약속 지켰네, 나는....그러니 자네도 약속 지켜줘.
■ 이제 되었나요?
□ 허허...됐네. 몇 일 동안 내가 아주 호강했네.

할아버지는 원하는 것을 알았다. 이제 할머니를 달래 드려야 했다.

■ 할머니. 계세요?
□ 아따∼또 시작이다. 왜 이렇게 불러 쌓는가? 뭔 일인가?
■ 하하! 할머니는 원하는 거 없으세요?
□ 난 없어. 저 노인네 가면 나도 따라가서 내가 모셔야지. 말도 지지리도 안 듣는 노인네.
■ 할머니 조상님이신데 그렇게 말하세요?
□ 저 사람이랑 내가 그 이 전생에서 부부였네. 그때도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여기서도 그렇게 말 안 듣고 저렇게 고집을 부려싸니....쯧쯧.

할머니가 혀를 찼다. 또 다른 형태로 이어져 있던 인연이었다.

■ 할머니도 원하는 거 말씀하세요.
□ 나는 딱히 원하는 거 없네...다만...나도 내 아들이 내 마음 좀 알아줬으면 싶어...지가 아 직은 날 원망해도 나는 저를 얼마나 사랑했다고.....저기...그런데 말이야. 나 올라갈 때 이것들 쌍둥이 데리고 올라가서 내가 좀 키웠으면 하는데. 정이 들어서…….
■ 그럼 너무 감사하고 안심되죠! 그리고 할아버지. 애들 자꾸 밉다 하시는데 이 애들 얼마나 불쌍하게 살다 가는지 잘 아시죠?
□ 그래도 잡놈은 잡놈이지 뭘 그러나! 그래도 내 자손이지…….다들 안 된 것도 잘 알지…….그래 도 내 씨지. 불쌍한 건 알아도 쳐다보면 화가 나니…….
■ 할머니.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면서 정말 원하는 거 없으세요?

보통 빙의 되어 있는 원령은 원한을 들어주고 풀어주지 않으면 나가려고 들지 않는다.

□ 젊을 때 동네 사람들한테 두들겨 맞았어. 창피해서 내가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몰매를 맞았네. 내가 결혼을 해서 애가 있었는데 개가(改嫁)를 했어. 애를 두고 갔지. 그래서 사람들한테 행실 나쁘다고 몰매를 맞았어. 그 탓에 애도 나를 싫어하고. 그래서 그 애가 애 미 원망이 많아. 에그..이런 얘기 뭣 하러 하게하나!

할머니는 말을 꺼내고도 부끄러운 과거라는 듯 말끝에 필자에게 투정을 부리듯 나무랐다.
이제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불렀다.

■ 슬기랑 이슬이 나와 볼래?
□ …….아저씨…….저희 나가기 싫어요. 근데 할머니가 자꾸 가야 된다고 해요. 엄마랑 있으면 안 돼요?
■ 자. 얘들아. 엄마 사랑하잖아. 엄마도 너희들 사랑하시지. 하지만 너희들 때문에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시는데 괜찮아?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 히잉....아뇨...그럼 안 되는데...히잉.....할머니 따라 갈게요.
■ 슬기는 어디를 많이 다쳤지?
□ 머리랑 다리요. 양쪽 다리가 다 앞으로 꺾였어요. 머리고 많이 다치고...
■ 동생은?
□ 얘는 만신창이예요. 머리도 다 깨지고 한쪽 팔이랑 다리는 으스러져 끊어져 나가서 못 찾았어요. 나머지 한쪽다리도 완전히 꺾였고요…….

참혹했다.

■ 이슬아. 나와봐.
□ 히잉...흑흑....

아이의 울음이 커졌다.

□ 우리엄마. 흑흑...우리엄마 다른 애기 생기면 우리는 전부 잊어버릴 거잖아!
■ 그렇지 않아. 엄마가 약속 하셨어. 절대 안 잊겠다고.
□ ....(한참을 울던 이슬이가 흐느끼며 대답했다.) 그러면 이슬이는...다시 애기되어서 태어나면 다음번에도 엄마한테서 태어날 거예요. 오빠도 그러겠대요.

이제 다들 영계로 갈 준비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유독 이슬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슬이는 이생에 원이 많은 모양이었다.
참혹하게, 그것도 제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이가 한 번에 모든 원이 풀어질 리가 없었다. 필자는 이슬이 에게 전생에서의 업으로 인해 일이 이어진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슬이의 전생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 자, 이슬이와 아버지가 인연이 되었던 전생으로 가는 거야?
□ ....시골동네 같아요...어?....아버지가 마당을 쓸고 있어요.
■ 아버지요?
□ 이번생의 아버지요. 미국 아버지. 그런데...거기선 머슴인가 봐요. 옷차림도 허름하고....
■ 본인은 어디 있나요?
□ 저는 마당 평상에 앉아 있어요. 사람들이 옥분 이라고 불러요. 여덟 살이고…….근데요...근데 옥분이가 그 사람을 채찍으로 막 때리고 있어요!
■ 왜 때리나요?
□ 음..말 안 듣는다고 하긴 하는데, 사실은 심심해서요. 그래서 때리고 있어요. 심심한데 나하고 안 놀아 주니까 심통이 나서요.
■ 그 머슴의 나이는 어떻죠?
□ 많아요. 제가 나쁜 놈이라고 욕하면서 때리고 있어요. 심심하니까…….
■ 그 머슴이 현재의 누구와 닮았나요?
□ 눈빛이랑 느낌이 아버지랑 똑같아요. 얼굴 색깔만 틀리고.
■ 그 시대에 머슴과 얽힐만한 큰 사건이 또 뭐가 있었나요?
□ 아…….내가…….봤어요…….
■ 뭘 봤죠?
□ …….그 사람이…….그놈이…….우리 엄마를 겁탈했어요. 내가 봤어요. 우리 엄마를 너무 힘들게 했어! 내가 죽일 거예요! 그 사람이 엄마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어요. 엄마를 죽이려고해요. 엄마 목에서....피가 나요! (숨이 가빠졌다.) 그 사람이 엄마를 죽였어! 칼로 목을 그었어요! 근데....엄마를 어딘가에 데려다 놔요. 아버지 옆자리에....우리..아버지가....아! 엄마 머릿속에 있던 할아버지랑 똑같아. 아!.....
■ 괜찮아요. 정리해 보세요.
□ 머슴이 엄마도 죽이고 아버지도 죽였어요. 그리고 자기도 스스로 숨을 끊어요.
■ 그리고 어떻게 됐죠?
□ 저만 남았는데 누가 나를 데려가서 그 집에서 키워요. 그런데 그 집 아저씨가 자꾸 나를 건드려요. 마음에 든다고. 첩이되래요. 그래서 어쩔 수가 없이 그 아저씨랑 살아요. 그러다가...그 아저씨가 말 안 듣는다고 나를 죽였어요. 그래서 열일곱에 죽었어요.
■ 그 머슴이 아빠를 닮았어요? 왜 전, 현생에 모두 당했나요?
□ 우리 5대조 할아버지가 이사람 저사람 일하는 여자들을 다 건드렸는데…….머슴도 그중 한 사람인데 자식으로 인정을 안 해줬어요. 그 사람도 그래서 우리 집에 와 있던 건데 난 그 사람을 머슴처럼 대하고 때리고 괴롭혔어요…….

기가 막혔다. 그렇게 따지면 그녀도, 그리고 그녀의 현생에서의 아버지도 모두 피해자였다.

■ 할아버지! 잠깐 나와 보세요! 지금까지 이야기가 전부 사실인가요?
□ 맞아…….내 자식인데...종년이 낳은걸 입적시킬 수가 있나. 애기 말 들으니 내가 다 잘못했네. 다 내 탓으로 비롯됐구먼. 그래 어쩌겠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 할아버지부터의 업이 지금 애기들 때까지 이어져 내려온 거예요.
□ 자손들한테 미안하네. 창피해서 뭐라고 할 말이 없구먼. 망신이지.
■ 예. 좋습니다. 영계로 가서도 아이들 잘 보살피고 치유 받으며 편안해 지세요. 가는 길 아시죠?
□ 자네한테 정말 고맙네.
■ 다들 원망도 없는 편안한 곳으로 가세요.

그들을 영계로 올려 보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최면에서 깨어난 유선은 아이들을 보내며 흘렸던 눈물 자국을 훔치며 웃었다. 그렇게 웃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가. 먼저 간 아이들을 제 가슴이 묻으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 지는 감히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런 그녀가 이제 한결 홀가분한 마음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모두 좋은 곳으로 보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앞으로 그녀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할 것을 기원하며 그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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