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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반지의 기억
2017-07-20 17:23:45

잃어버린 반지의 기억




결혼한 지 채 한 달이 안 된 유리는 결혼반지를 분실한지 한주가 다 되어 가는데도 기억이 나질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최면을 통해 기억력이 최상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유리는 평소에도 건망증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심한 편이라고 했다.
대체적으로 볼 때, 일단 최면 상담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은 기억력이 극도로 좋아져 그 일이 있던 순간들을 순차적으로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유리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는 기억을 하는 패턴이 달랐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이 건망증이 심하다고 했다는 것과 일치되었다. 하지만 필자가 듣기에 그건 건망증의 일종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패턴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유리의 경우는 기억을 못하거나, 기억하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닌, 기억이 아예 없는 경우에 속하는 것이었다.
후에 상담 내용에 나오겠지만, 그것은 다중인격의 일종으로 유리가 자신의 안에 친구를 (분신의 일종이다) 만들어 놓고 그와 대화를 시도할 때에는 일상적인 기억이 모두 끊겨버리는 현상이었다. 주의를 내면에 기울이는 탓으로 일상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 전에는 반지를 찾기 위해 기억을 되돌리는 상담에 들어갔다.

■ 반지를 읽어버렸던 날 아침으로 돌아갑니다. 당신은 자신이 경험한 모든 내용을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어디지요?
□ 음…….다 까매요…….
■ 왜죠?
□ 글쎄요.

보통사람은 멀지 않은 기억을 되돌리는 데는 큰 장애가 없다. 그러나 그녀는 시작부터 온통 까매서 아무것도 기억나질 않는다고 했다.
■ 지금 기분이 어떻죠? 그대로 느껴보세요.
□ 불안해요. 시어머니가 의심이 되요.
■ 어째서 시어머니를 의심하죠? 시어머니는 반지가 있어도 차고 다니시질 못 할 텐데?
□ 그냥 그래요. 오빠 (남편)도 못미더우니까 그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이 되요. 무엇보다 기억이 나질 안으니까 더 한 것 같아요.
■ 그럼 그날의 일을 아침부터 떠올려 보세요. 그날이 무슨 날이었죠?
□ 시어머니 생신이었어요.
■ 아침에 일어나서 뭘 했죠?
□ 음…….기억이 나질 않아요.
■ 당신은 기억 해 낼 수 있습니다. 뭘 했나요?
□ 정말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날은 출발하던 때부터 기억나요.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떠오르지 않는 게 아니라 그 기억이 전부 없어 진 것같이 먹통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기억은 반나절을 훌쩍 지난 오후 3시쯤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 어디서 출발했나요?
□ 역에서 오빠를 만나서…….차를 타고 시골에 갔어요. 시어머니 댁이요.
■ 어딘가에 들르지 않고 바로 갔나요?
□ 네…….아니요! 아니…….네…….그냥 바로 갔어요. 술을 사가지고…….
■ 술이요? 시어머니 댁에 술을 사가지고 갔나요?
□ 네. 아! 아니다…….먼저 술을 사가지고 큰집에 들렀나봐요. 그래요…….큰집에 들렀어요.

그녀는 아주 큰 맥에서부터 횡설수설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짧은 시간 중에서도 한 부분이 뭉텅 떨어져 나간 듯이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편적인 일들은 기억이 나는데 큰 일이 진행되는 맥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순서가 뒤죽박죽 되서 헷갈려 하고 있는 것이다.

■ 시어머니 댁에 도착할 때까지는 반지가 손에 있었나요?
□ 네. 손에서 반짝거리는 것을 봤어요.
■ 시댁에 가설 뭘 했나요?
□ 잘은…….기억이 안 나는데…….밭일을 했어요.
■ 밭일을 했으면 반지는 끼고 했나요?
□ 네…….바지를 끼고 장갑을 꼈어요. 그리고...일을 마치고 손을 씻었어요.
■ 손을 씻기 전에 반지를 빼놓지 않았나요?
□ 빼놓은 거 같기도 해요…….그런데 그게 어딘지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나요.

또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최면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원래의 능력보다 더 많은 상태를 끌어 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두뇌의 회전도 자의에 따라 빠르게 할 수 있고, 더불어 기억력도 자의가 있다면 더욱 뛰어나 질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그녀의 그날 일을 차근차근 되짚어 주었으나 기억을 되돌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보통 일반인은 그 정도면 세부적인 일까지 전부 기억하는 데 비해 그녀는 기억이 나질 않는 중간 중간의 일은 자신이 겪었던 일이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 시간에 그녀는 그곳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한참의 최면 유도에도 그녀가 기억해 내지 못하자 필자는 뭔가 그녀의 안에 다른 개체가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 당신은 기억이 단편적으로 끊어져 있어요.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집중하세요. 당신은 평소에도 건망증이 심하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뭐죠?
□ 머릿속에 다른 생각을 너무 많이 해요.
■ 어떤 생각인가요?
□ 상념이요. 나 자신을 항상 살펴요.
■ 왜 자신을 항상 살피게 되었죠?
□ 불안해요. 왠지 불행하게 될 것 같기도 하고.
■ 그 불안감의 원인이 뭐죠?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 음…….어릴 때..일곱, 여덟 살 때. 항상 혼자 놀아요. 그러니까 혼자 생각하고 혼자 말하고 공상에 빠지게 되고. 불안해하면서도 늘 날 관찰하게 되고…….

혼자 생각을 하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경험에 두고 볼 때 이런 경우는 보통 자신 안에 자신의 분신을 또 하나의 자신으로 키워놓고 있는 경우다.

■ 자신 안에 있는 자신의 또 다른 분신을 만나봅니다. 인사를 건네 보세요. 뭐라고 하나요?
□ 계속 웃어요.
■ 어릴 때부터 둘이서만 지냈나요?
□ 네. 그래서 지금은 그게 더 편해요.
■ 건망증이 심한 게 아니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 분신과 대화 때문에 외부에서 일어나는 내일에는 관심이 없군요?
□ 맞아요.
■ 어릴 때 불행한 기억이 있나요?
□ 많이 외로웠는데…….그땐 이렇게 하는 게 외롭지 않게 살 기 위한 방법이었어요.
■ 그렇지만 이제 성인이고 사회생활도 해야 해요. 가정도 꾸렸고. 그러니 밖의 생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어요?
□ 하지만 밖의 것들은 재미가 없어요. 결혼도 재미가 없고…….
■ 당신이 외부와 단절되어 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아주 어렸을 때도 그랬고 초등학교 때에도 그냥 저는 친구들에게서 고립감을 많이 느꼈어요. 상처도 많이 받았고. 그런데 그 애들이 그러는 이유를 몰라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너무 힘들어서 안에서만 대화하고 혼자만 생각했는데 이젠 그런 것들이 더 편해요.
■ 항상 함께 해 왔던 분신을 버리라는 게 아니에요. 다만 그 분신과 분리되어 있어서 나타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을 이젠 함께 하라는 거예요.
□ 하지만 내가 외면하면 상처받아요. 그러면 그런 걔를 달래게 되고. 그럼 또 다시 걔하고 있게 되요.

그녀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오랜 시절, 근 20여 년간을 자신과 함께하고 외로울 때 도와주던 유일한 친구를 이젠 버려야 한다는 게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녀에게 그 분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분신과 함께 함으로써 외부에서 일어나는 곤란한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인지시켜야 했다.

■ 내가 직접 분신에게 물어볼게요.
□ 그 애가 무서워해요.
■ 도와주려고 하는 거예요. 잘 달래 보세요. 대화할 수 있죠?
□ …….네에…….

여자치고는 굵다 싶을 정도의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에서 이제 가느다란 미성의 맑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 그동안 어린 시절부터 상처받지 않게 늘 함께 해준 거 너무 고마워요. 하지만, 이 친구가 이젠 성인이 되서 계속 그렇게만 살게 되면 곤란한 일이 너무 많아져요. 그러니 사회생활에 동참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어요?
□ 그럼 내가 너무 외롭잖아요.
■ 본인도 그 생활에 항상 함께하면 되잖아요. 이름이 뭔가요? 몇 살이죠?
□ 유리예요…….장유리…….7살

가느다란 실낱같은 목소리로 그녀가 대답했다. 분신은 그녀가 외로워하고 분신을 만들기 시작했던 그 시점의 나이에 머물러 있었다.

■ 어떤 생각이 들어요?
□ 그냥 재미있어요. 처음 밖에 나와 봤거든요~ 호호호~

그녀는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
처음의 수줍어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분신은 내담자 장유리와는 정 반대의 맑고 쾌활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 유리! 친구 사랑하죠?
□ 네!
■ 어릴 때 힘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항상 친구가 돼 주었죠?
□ 네! 헤헤헤…….
■ 이제 이 친구가 결혼도 하고 성인이 되어서 사회생활도 해야 되는데 자꾸 유리와 함께 하게 되서 힘들어해요. 그러니 친구의 생활에 동참하세요.
□ 그럼 나는 뭐해요? 난 허수아비잖아요.
■ 그렇지 않아요. 항상 함께 하는 거예요.
□ 하지만 내가 직접 하는 게 아닐걸요.

이미 하나의 개체로 성장해 버린 분신은 자신이 사라져 버릴 거라는 불안함을 내비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내담자의 불안감과도 일치한다.
내담자와 분신이 같은 개체라는 것을 그 둘에게 인지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 그렇지 않아요. 지금 그 안의 유리는 밖에 있는 유리와 같은 존재인 거예요. 밖의 유미는 밖을 살아가고 있고, 안의 유리는 내면을 다스리는 것일 뿐 이예요.
□ 헤헤헤..네! 그런데 저 너무너무 슬퍼요.
■ 내면에 있는 유리도 주인인 거예요.
□ 제가요? 정말 이예요?
■ 그럼요! 그러니 외로울 때 함께 하는 건 늘 같아요. 다만, 친구의 일에 항상 함께 하는 거예요. 안에만 있지 말고. 그게 더 즐겁지 않겠어요?
□ 헤헤헤! 좋아요! 너무 좋아요! 그럴게요! 그렇지만 이게 습관이 되서 고치기 힘들면 어쩌죠?
■ 그렇지 않아요! 그건 마음먹기 달린 거니까 잘 할 수 있어요.
□ 헤헤헤! 네! 제가 항상 기도해 줄 거예요.

다시 본래의 그녀를 불러냈다.

■ 기분이 어때요?
□ 좋아요! 그래서 웃음이 나오는데…….그런데 눈물도 나요.
■ 어려웠던 일이 많아서 그래요. 유리씨 분신도 깨우쳤어요. 마음이 한결 편해졌죠?
□ 네.
■ 이제 분신도 유리씨와 함께 하기로 했으니까 기운내서 항상 긍정적으로 밝게 살아가세요!
□ 네!

상담을 마치고 연구소를 나서는 그녀의 발길이 가벼워 졌다.
어두운 표정으로 불안감을 안고 방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비록 끊긴 기억 때문에 반지가 어디 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그녀는 몸속에 또 하나의 분신을 또 다른 개체가 아닌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이제 건망증이라고 생각되도록 기억이 사라지는 일도 없을 것이고, 좀 더 자신의 생활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여려서 만들게 되었던 분신을 완벽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줄 수 있게 되서 필자도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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