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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떠나지 못한 아들의 소원
2017-07-20 17:20:11

차마 떠나지 못한 아들의 소원





맑은 날에 바람까지 부니 정말 이런 하늘을 청아하다고 하는 모양이다.
연구소 주변엔 시끄러운 소리를 낼만 한 게 없어서 창문이라도 열고 바람을 맞을 땐, 정말 이 도시에 이렇게 고요한 곳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어렵게 연구소를 들어선 50대의 부인 M은, 이미 몸을 자신의 정신으로 주체할 수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연신 몸을 가눌 수 없는 건 둘째 치고 서라도, 사람은 살아야 했다. 그런데 뒤틀리는 몸은 그보다 몇 배나 더한 고통을 수반하고 그녀에게 찾아왔다. 더구나 가슴과 목 쪽의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병원에 가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7개월에 걸쳐 병원을 비롯하여 침이며 뜸, 한약까지 써보지 않은 게 없다. 물론 모두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그 고통의 원인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누군가 들어와 있었다. 7개월 전에 심부전으로 세상은 뜬 양아들 영수였다.
양아들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그녀는 지금 남편의 두 번째 부인, 즉 첩이었던 탓이었다. 본 부인과는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던 탓에 십 년 전 첩을 들였던 것이다. 지금도 그들은 옆집에서 같이 살고 있다고 했다.
양아들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49제도 지내 주었고, 그들 부부는 나름대로 영결식 (영혼결혼식)까지 생각해 두고 있었다.
우선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양아들이 들어와 있는 것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 그녀의 몸에 들어있는 영가를 확인 후 대화를 시작했다.
□ 잠시 후 (몸이 움직인다.) 후후후...

그녀의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녀 목소리가 아닌 웃음이 한숨과 함께 비집고 나왔다.

■ 누군가요?
□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한다.) 죽겠어. 가슴이 답답하고 죽겠어.
■ 죽을 때 그렇게 죽었어요?
□ (숨차하며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 자, 진정해요. 누구예요? 이름이 뭐지?
□ (계속 숨을 고르지 못하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고 소파에 누워버린다.) 영수…나…영수…
(울부짖는다) 어흑! 어흑…헉…(힘들어한다.)
■ 그래 답답하지? 왜 엄마한테 들어와 있지?
□ (소리를 지른다.) 엄마 아냐!
■ 엄마 삼아 줬잖아.
□ 엄마 아냐!!!
■ 그러면 왜 여기 들어와 있어?
□ 미워…
■ 뭐가 밉지? 말을 해. 너한테 잘 못한 게 있니?
□ 미워…다 미워!

그녀가 가슴을 내리 치기 시작했다.

■ 가슴에 있니? 목도 답답해?
□ 응…(몸을 비튼다.)
■ 영수야. 어떻게 해줄까?
□ 가! 가! 다가!
■ 자, 많이 힘들었지? 고생하나 죽어서 여기 들어와 있어?
□ 다 미워! 미워! 미워! 미워!
■ 영수야. 진정하고.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어?
□ 으흐흐흑…나가…가!
■ 영수야. 이유가 뭐야?
□ 나…(영수가 흐느꼈다.) 외롭단 말이야. (이제 울기 시작했다.) 나 혼자인 거 싫어.
■ 그럼 어떻게 해 줄까? 장가 보내줄까?

그들이 말했던 영결식에 대한 물음을 했다.

□ 으응…(고개를 끄덕인다.)
■ 또 뭘 해줄까? 원하는 게 있어?
□ 아줌마 가라고 해! 집에서 나가라고 해!
■ 아줌마가 싫어?
□ 싫어. 아줌마 보내. 우리 아버지보고 아줌마 보내라고 해. 나…우리 아버지도 무서워. 아줌마만 좋다고 하구…그래서 복수하려고 들어왔어. 죽여버릴거야!

악한 감정이 극에 달해 있었다.
영혼은 전후 사정을 고려해 사고 할 수 없는 탓으로 깨우쳐 줘야만 한다.
여하튼 지독한 원혼령이 되어 인간에게 들어와 인간을 죽일 마음을 가지고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은 달래 주어야 했다.
상담 도중에 같이 들어와 있는 영수의 아버지에게 질문했다.
" 왜 그렇게 아들을 힘들게 했어요?"
" 애가…우울증이 있어서 혼내곤 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4년이 넘게 정신과 치료 받고…"
" 영수한테 직접 말해보세요."

□ 아버지 ; 영수야. 나는 네가 사회생활 제대로 하길 바라서 더 다그쳤던 거야. 네가 우리 집 큰아들 아니냐. 하다못해 정상적으로는 살아야지…아빠가 너한테 손도 댔다만, 그거야 하나뿐인 아들 사람 되라고 그런 거지 너 미워 그런 거 아니다…
□ 영수 ; 아줌마 몸 아프게 하고 그랬어…
□ 아버지 ; 아빤 너 사람 되라고 한거야. 세상 어느 애비가 자식 사람 되는걸 마다하겠어.

진실이 섞인 대답이 나왔다.
그의 아버지는 정말 후회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였다. 세상 어느 아버지가 자식을 미워하겠는가.

□ 이해 안가는건 아니지만 마음에 와 닿질 않아요. 다른 건 몰라도…아줌마는 꼭 보내야 되요.
■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아줌마 죽이려고 들어 온 거야?
□ (끄덕인다.) 목에 있어. 졸라서 죽이려고…
■ 아버지가 영수 장가는 보내 주실 거야. 장가 보내주면 즉시 떠나야 한다. 그리고 아줌마 힘들게 하지마. 아줌마가 할 말이 있으시데.

그녀가 영수에게 직접 말을 꺼냈다. 한 입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녀는 영수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 진심으로 양손을 모으고 사죄했다.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다고 울면서 고백했다.

□ 됐어요…

용서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저 됐다는 말이 영수의 대답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옆에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고 있었다.

□ 아줌마한테 고마운 것도 있어요. 나 아팠을 때 신경써주고 챙겨주던것들…그런데 우리 엄마는요. 우리 엄마는 불쌍하잖아. 혼자 있는 우리 엄마는 너무 불쌍하잖아.

영수가 원하는 바를 확실히 알았다. 그는 아줌마에게 진심으로 악의가 있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도 떠나오고 홀로 남겨져서 아버지 사랑도 못 받으며 내내 마음 고생할 어머니가 가여워 그녀의 안으로 들어와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영이지만,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었다.

■ 영수야. 아버지가 영혼결혼식 해 줄 거야. 그때까진 좋은 배필도 찾아야 해서 쉽지는 않아. 결혼이 쉬운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너 위해서 애쓰시는 거니까 가만히 있어 야 한다. 조용히 기다릴 수 있지?
□ 네.

상담을 마친 후에 영수에 대해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대학을 졸업 할 때까지 계속되고,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정신 이상이 와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했다.
그렇게 고생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한 원인도 없이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서는 숨을 못 쉬고 답답해했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곧 숨졌다고 했다.
사인은 심부전증이었지만, 이전에 그에게서는 정신적인 면을 제외하고는 다른 병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영수가 죽을 시점인 7개월 전부터 두 번째 부인인 그녀의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영수가 들어와 있을 거라는 것은 예상 할 수 있었다.
상담을 마치고 영수는 약속대로 이제 한동안 조용히 있을 것이다.
그녀는 몸이 한결 개운하고 아프지도 않다고 했다. 부축을 받으며 들어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해코지를 하려고 안 하더라도 그렇게 힘들게 병으로 죽은 영수의 영혼이 실려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겐 부담이 되고 힘들 거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하루 빨리 영혼결혼식을 해 줄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영혼결혼식을 어렵게 마치고 얼마 후에 그들 내외가 다시 찾아왔다.
배필을 찾기가 힘들어서 어렵게 좋은 아내를 구해 영혼결혼식을 해 줬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몸이 완치되지 않는 다는 말을 했다. 다녀갔던 뒤로 아픈 것도 잠잠해 졌지만, 가끔씩 몸이 부서질 것 같이 아픈 건 계속 되고 있다고 했다.
말끝에 영수의 아버지가 집안 얘기를 털어놓았다.
집안에 급사(急死) 한 사람이 둘이나 있고 영수가 세 번 째라는 이야기다.
아버지 형제분들, 그러니까 영수에게는 백부가 되시는 분들이 한 달 간격으로 아무 병명도 없이 자연사했다는 말이었다. 아버지 형제들 중 제일 큰아버지를 제외하고 그 아래 분들이 차례대로 돌아가셨고, 순서대로라면 영수의 아버지가 다음이었다. 그런데 영수가 가버린 것이다.
그녀의 몸이 아직도 완쾌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아직 영수가 그녀 몸 안에 남아있었다.
그녀를 최면 유도해 영수를 다시 불러냈다.

■ 영수야.
□ …(그녀가 다시 몸을 비튼다.) 네…
■ 영혼결혼식도 해 줬는데 왜 아직 안 갔어. 할 말 있으면 내가 전해줄게 다 해봐.
□ 왜…안가요…아줌마 왜 안가요!
■ 그래…그리고 또?
□ 없어요. 색시도 예쁘고 마음에 들어요.
■ 색시는 어디 있어?
□ 절에 두고 왔어요. 같이 가자니까 그러면 안 된다고 자기는 거기 있겠다고 했어요.
■ 영수야. 아버지하고 아줌마가 해결해야 될 문제가 많데. 그래서 아줌마가 나가는 건 당장 은 힘들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셔. 그리고 엄마도 괜찮다고 힘들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며. 엄마도 괜찮다는데 네가 왜 그래. 엄마 속상하시게.
□ 그냥 싫어요.
■ 영수 죽을 때 어떻게 죽었니?
□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잡기고 어지럽고…할아버지가 가자고 해서요.

누군가 다른 인물이 나왔다. 할아버지라고 했다.

■ 영수야. 혹시 너의 백부님들도 할아버지가 데려갔니?
□ 할아버지가 화나면 큰아버지도 데려간다고 했어요.
■ 할아버지가 왜 백부님들이랑 너를 데려갔어?
□ 큰아버지가 나쁘데요.

그의 아버지가 집안 얘기를 다시 풀어놓았다.
그의 큰아버지는 재산을 물려받은 후 술을 과하게 마시며 망나니짓을 해댔다. 얼마 안 있어 온 재산을 탕진하고, 조상 모시는 일 또한 소홀히 했다고 했다.

□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산소에 물이 들어찼데요. 그래서 너무 불편하시데요.
■ 혹시 할아버지 와 계시니? 부를 수 있어?
□ 아니요. 안 오신데요. 할아버지가 다 밉데요. 할아버지 산소 물이 찼으니까, 얼른 집 좀 고쳐달라고 하셨어요. 천도도 해달라고 하셨고요.
■ 그래. 영수야. 또 하고 싶은 얘기 없니?
□ 사실은 굳이…할 얘기 없어요. 그렇지만, 엄마가 있어야 될 자리에 아줌마가 있는 게 싫어요.
■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니뜻을 잘 알고 있으니 어른들이 지혜롭게 해결하도록 시간을 좀 주겠니?
□ 아버지…할아버지가 아버지 차례니 아버지 데려 가겠다고 한 거…제가 막은 거예요. 아버지 대신 제가 먼저 온 거예요…

충격적인 말이었다.
영수 아버지가 충격 때문인지 더듬거리며 입을 뗐다.
" 맞아요…제가 그때쯤…심하게 아파서 죽다가 살아났어요…"
영수는 아버지 대신 갔다고 했다. 분노한 할아버지가 데려 가려고 했던 건 손자가 아니라 자신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조상 모시기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고 돌아가신 분 보시기에 좋지 않은 일만을 해대니 벌을 내리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 아줌마 안에 있으면, 죽어버리긴 했지만 아버지도 볼 수 있고 엄마도 볼 수 있고, 동생들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 하지만, 아줌마가 너무 힘들어하잖아. 색시한테 가야지.
□ 네. (영수가 울먹였다.) 갈게요…

영수의 울음소리가 점점 서럽게 사무쳤다.

□ 갈게요…우리 아버지가 불쌍해요…아줌마한테도 사실 죄송하고요. 아줌마랑 통하는 데가 있어서 들어왔거든요…저 이제 갈게요.
■ 그래 이제 색시한테 가면 여기오지말고 영계로 가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 네. 가족들에게 좋은 일 많이 있도록 빌게요…

영수는 조용히 빠져나갔다.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원도 풀어줬고 오해도 풀렸다.
그녀는 가슴 쪽이 검은 구름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며 울었다.
미안한 감과 함께 고마운 마음까지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아버지 대신 죽긴 했지만 친어머니를 두고 먼저 온 게 마음에 걸려서 자신과 파장이 맞는 아줌마에게로 들어왔던 것이다.
참, 마음이 여린 아이다.
영수의 아버지와 그녀는 상담이 끝난 후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계속 울먹였다.
아버지를 살리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도 걱정하던 애틋한 아들의 마음은 평생 그들의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
재차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그들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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